2010년 4월 29일 목요일

안녕!? 두두

어떤 종류의 변화들은 아주 쉽게 눈에 띈다. 가령 처음으로 걸음마를 시작한 날이라던가, 여러 단어를 조합해서 그럴 듯한 문장을 말하기 시작한다던가. 대체로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그런 경우에 속할 것이다.


반면에 별로 잘 보이지 않는 변화들도 있다. 가령 두두와의 소원해진 관계 같은 것들.

두두(doudou)는 아이들이 늘 지니고 다니며 각별한 애착을 가지는 물건들이다. 대체로 인형, 조그만 담요 조각 들이 해당된다. 한국의 두두 문화는 사실 나도 잘 모르긴 하지만, 이곳에서는 특히 관대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학교(école maternelle)에 가면 의례 교실 출입구부근에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학교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자기 두두를 그 속에 집어 넣어 두었다가 일과가 끝나면 다시 챙겨 집으로 돌아온다. 학교에서 낮잠을 자는 경우, 잠자는 방에도 역시 두두 상자가 놓여 있는데, 이번에는 자기 잠자리로 들어가기 전에 자기 두두를 챙겨 잠자리로 향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퍽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매일 물고 빨고 땅에 떨어뜨려 지저분한 것을 계속 곁에 지니게 하는 것이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까지 동규가 지녀온 두두의 이름은 '찍찍이'. 백화점 galleries lafayette에서 구입한 쥐 인형인데 학교는 물론이고 잠잘 적에도 늘 지니고 다녔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학교에 다니고 다니기를 그만두더니, 얼마전부터는 밤에 침대에 들어가면서도 찾지 않는다.

그렇다고 갑자기 동규가 큰 형아처럼 변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얼마전부터 새로운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식사 중간에 갑자기 엄마를 향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 무릎에 앉아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졌다. 창밖에서 사람들이 보면 창피하지 않냐는 엄마의 지적이 있으면, 슬쩍 창가로 가서는 커튼을 닫고 다시 돌아온다. 최소한 자기 나이에 그런 행동이 자랑할 만한 꺼리가 안된다는 것은 잘 아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요즘 며칠동안 찍찍이를 통 본 적이 없는데 과연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일까? 한때 즐겨보던 곰돌이 푸우 만화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푸우가 크리스토퍼 로빈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 크리스토퍼가 학교에 가야 하고, 그렇게 되면 푸우와 전처럼 자주 놀게 되지 않으리라는 이야기를 한다. 동규의 태도를 보면서 그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된다.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바람 많던 일요일

어느 일요일, 온가족이 씨네마떼끄 앞에서 만나기로 했지요. 아빠는 오전에 먼저 영화를 보러 집을 나서고, 영화가 끝나면 그 앞에서 동규와 엄마를 만날 예정이었어요.


햇빛이 참 좋았는데 대신 바람도 참 많이 불었어요. 바로 앞 잔디밭에는 어쩐 일인지 재주넘기하는 형, 누나들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정말 활기찬 풍경이었어요.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물이 졸졸 흘러나오는 경사진 곳을 오르기 좋아하는 동규. 사진으로는 잘 모르시겠지만, 실제로는 아주 느린 속도로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답니다. 주변의 다른 아이들과는 좀 대조적이지요.

대신 평지에선 무척 빠르게 이동하는 동규. 사진속의 다리를 건너 보이는 큰 건물이 국립 도서관입니다.


2010년 4월 11일. Cinémathèque française 부근에서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아빠 생일 다음날에

생일 챙기기에 흥미를 잃은 지도 오래되고 하다보니 내 생일인데도 어쩐지 내가 주인공이 아닌 듯하다.


엄마와 동규는 이미 전날부터 생일날엔 아빠를 대장 시켜주자 합의를 봐 두었는데 과연 대장이 되어서 좋을 게 뭐가 있다는 건가 하는거다. 이상적인 집단이라면, 대장이란 감투는 골치거리인 인물에게 자성의 기회를 주는 정도인 것 아닐까? 어쨌든 주는 감투니 받기는 한다만, 큰 기대는 않으면서도.

마침 수요일이라 동규가 학교를 쉬기 때문에 라 데팡스에 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좀 사기로 했다. 나는 운동화를, 동규는 장난감을, 동규 엄마 - 나랑 생일이 한달밖에 차이나지 않는 관계로 대충 함께 묻어가는 분위기 -는 옷을.

쇼핑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을까 했으나 동규의 '버럭'이 무서워서 일단 장난감 상점에 들렀다. 끝없이 새로운 미니카를 집어들고 게임 코너에서 구경하는 동규를 간신히 뜯어 말려서 겨우 미니카 하나만 집어들게 하고 대신 플레이모빌에서 나온 잠수함 - 수중 모터가 달린 - 을 사게 만들었다. 사실 장난감 사는 과정은 보기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부모의 염려, 철학, 취향, 경제사정 등의 수많은 요소가 관여된 지루하면서도 험난한 과정. 물론 첫째로 꼽지는 않았지만 '부모의 취향'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옆의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고 운동화를 사러 갔다. 쇼핑 길게 끄는 것은 죽기만큼 싫은 일이므로 속전속결, 첫번 상점에서 처음으로 신어본 운동화를 샀다.

가장 힘든건 동규 엄마의 옷사기. 가끔 짤막한 평이나 해주고 계산을 도와주는 외에 그냥 밖에서 동규랑 뛰놀았다. 바깥 날씨는 여전히 서늘한데 쇼핑센터 안에서 뛰어다니는 동규의 머리에선 금새 땀이 줄줄 흐른다. 티슈로 닦아주고 또 따라다니고 도망다니고 하다 보니 얼른 집에 가고 싶은 생각밖에 안든다.

결국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타서 동규 간식을 먹인다. 과자도 먹고 유제품도 먹고. 그리고 집에 도착해 동규가 목욕을 하는 동안 내가 케익을 사오기로 결정한다. 내 생각대로만 한다면 그냥 넘어가고 말겠지만, 언젠가부터 동규는 식사 후의 디저트를 무척 즐기는 어린이로 성작해가고 있으므로.

케익 사러 나가기 전, 동규와 플레이모빌을 조립하고 욕조에 물을 받은 후 그 속에 넣어서 잠시 가지고 놀았다. 잠수함에 다는 수중모터에 엄청난 기시감이 느껴졌다. 분명히 어릴 때 이것과 거의 동일한 모터를 가지고 논 기억이 있는데... 그리고 집을 나서 케익을 사고 돌아왔다.

목욕, 저녁, 케익까지 다 먹고 곧바로 동규 이를 닦이고 나니 8시 30분이 훌쩍 넘었다. 침대에 눕히고 책 읽어주고 다리 주무르고 - 동규 엄마의 성장통 이론에 따라 요즘 열심히 마사지 시술중이다. 조만간 우리 엄마 주물러드린 횟수를 능가하게 되겠지 -잘자라고 인사하고 거실로 나오니 9시가 살짝 넘었다.


오늘 아침 다시 대장으로 돌아간 동규가 학교가기 직전까지, 대장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내 이론을 들려주었다. 대장은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이므로, 반찬도 골고루 먹어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 책임들을 잔뜩 일러주었더니만, 앞으로 대장은 아빠나 하라고 한다. 더 균형잡힌 지도자관을 심어줘야겠다.

로댕 박물관

4월의 첫째 일요일을 맞아 아빠와 함께 산책삼아 로댕 박물관에 다녀왔어요.


발로 꾸불꾸불 선을 긋고 있네요.

얼마전 미장원에 다녀온 이후로, 이런 머리가 되었습니다.



이 사진의 테마는 바로 '휴식'.

박물관에 모래장난하는 곳이 있더군요.

2010년 4월 4일 Musée Rodin

2010년 4월 13일 화요일

지붕뚫고 하이킥 외...

좀 뒤늦게 보기 시작한 '하이킥'. 결국 한국 종영과 거의 동시에 우리 가족도 종영을 맞았다. 동규가 함께 보기에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이 되어, 온 가족이 침대 위에 쭈르르 앉아 앞에 놓인 컴퓨터 화면을 통해 시청했는데, 드라마가 엄청나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렇게 시간 때우는 것이 맘에 들었는지 종종 동규는 '하나 더보자'라며 졸라대곤 했다. 초반엔 다운로드 받아놓은 것들이 많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도 했지만,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드라마를 쫓아갈 즈음엔 어쩔 수 없이 동규를 실망시킬 수 밖에 없었음은 물론.


가끔 제 마음에 드는 장면이나 대사를 보면 실생활에서 써먹기도 하는데, 가령 해리가 땡깡부리는 장면을 보고 나서는 툭하면 '다 내꺼야'를 연발하지 않나, 전에 엄마와 둘이서 (겨우 한두편?) 봤던 드라마 파스타의 이선균을 흉내내서는 '내가 셰프야!' 하고 버럭버럭 하며 대장노릇 하려고 해서 어이없어 하며 셰프노릇 좀 시켜줬더니 하는 짓이 가관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따위를 보고 나서 과연 동규는 그걸 어떻게 이해하는지 궁금해서 종종 그에 대해 질문을 해본다. 주요한 사건이 무엇인지, 주인공의 동기가 무엇인지, 어떤 인물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지 등등. 아무래도 세간에서는 하이킥의 러브라인이 꽤 주요한 화두였기 때문에 동규에게도 그에 대한 질문을 좀 해봤다. 누가 제일 마음에 드느냐 했더니 세경이 좋다고 한다. 왜냐고 하니, 이쁘고 착하다고. 반면 정음같이 통통튀는 캐릭터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다. 형아들 중엔 누가 마음에 드는가 물으니 첫째로 꼽는게 준혁. 역시 착해보이는가 보다. 종합해보면 동규는 세경-준혁 커플을 지지한 셈이라 할 수 있을 듯.

요샌 드라마 보는 취미도 잃어버린 동규가 요즘 가장 열중하고 있는 일 중 하나는 '카트라이더' 하기. 하루에 30분의 시간을 허락해 주었는데 물론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 카트라이더는 한국의 온라인 자동차 레이싱 게임) 처음엔 하기가 어렵다고 아빠보고 해보라 해서는 구경만 하더니, 어느새 아빠의 작은 도움조차 귀찮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엄마 말로는 동규의 실력이 아빠보다 나은 정도에 이르렀다 하는데, 그건 좀 과장이 분명하다. 동규의 게임 플레이가 앞뒤 가리지 않는 야생마 스타일이라면 아빠의 그것은 경험과 숙고에서 비롯된 전략과 절제가 더욱 가미된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상황에서 야생마가 늙은 종마의 경험을 능가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훌륭한 조련사 없이는 금새 한계에 빠지게 되는 것이 우리가 익히 티비와 영화에서 봐온 사실 아닌가. (예 : 톰크루즈 주연의 '폭중의 질주'. 같은 배우가 나왔던 '컬러 오브 머니' 라던가 어쨌건 야생마-늙은종마 파트너의 이야기는 세상에 무궁무진하다.) 아무래도 이를 증명할 길은 나중에 한국에서 컴퓨터 두대 붙여놓고 두 사람만의 레이싱을 펼치는 것이 될 것이다.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 학교에서 동규 데려와야 겠다. 엄마가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동규가 30분간 레이싱에 몰두할 가능성은 약 99.9%.

2010년 4월 11일 일요일

카니발

3월도 거의 다 끝나갈 무렵, 학교에서 카니발 행사가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아이들이 직접 준비한 분장 - 동규 반 아이들의 테마는, 아기 돼지 삼형제였는가 봐요. 돼지 가면을 쓰고 집을 들고 다니더군요, 동규는 불편하다고 마스크를 아빠에게 맡겨두긴 했습니다만 - 을 하고 동네를 한바퀴 행진했어요. 조금씩 비도 내리고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런 면에선 꽤 꿋꿋하지요. 아이들 보다도 지나는 행인들과 상점 주인들이 이 모습을 보고 더 흐믓해하는 것 같더군요.

오후엔 음료수, 과자 등을 갖춰놓고 파티를 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순전히 동규의 증언에 의지할 수 밖에 없군요. 사탕만 너무 먹지 말고 케익을 많이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해 두었는데, 그랬다고 자신있게 얘기하니 뭐 믿는 수 밖에요.

길에서 행진한 것도 아마 이게 생전 처음일 것 같군요.


2010년 3월 30일.

긴머리, 칠판...

3월엔 봄이 올랑말랑 헤깔리게 만들기도 했고, 영국에서 고모도 놀러오시고 그랬지요.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동규도 미장원 가는걸 싫어하지요. 엄마는 끈질기게 권유를 하지만, 자기 입장도 있는지라 아빠는 늘 미적지근하니까 어느새 몇 달이 훌쩍 지나고 동규는 장발 어린이가 되고 말지요. 안그래도 머리에 땀이 많이 나는 편인데, 머리까지 길고, 자전거라도 한번 타면 머리가 흠뻑 젖고 말아요.


3월 20일, Champs de Mars에서 자전거, 축구를 즐기고.


보다 못한 엄마가 집에서 앞머리만 다듬어 준다고 한 결과가... 어쩐지 버섯을 보는 것 같군요.


3월 24일


고모가 혼자서만 잠시 파리에 놀러 오셨거든요. 글씨, 그림 연습 열심히 하라고 이렇게 멋진 칠판을 사주셨어요. 덕분에 엄마 아빠 그림 실력도 많이 늘게 생겼군요.


3월 29일

연극 관람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 본 연극무대. Théâtre Michel이라는 극장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학교에서 단체 관람하러 갔어요.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둡고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며 나가자고 하더군요. 할 수 없이 아빠랑 같이 극장 로비에서 사진찍으며 놀았죠. 영화 극장에 익숙해지는 데도 시간이 좀 걸렸는데, 연극이라고 예외는 아니군요.




2010년 3월 16일. Théâtre Michel, 38 rue des Mathurins, 75008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