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챙기기에 흥미를 잃은 지도 오래되고 하다보니 내 생일인데도 어쩐지 내가 주인공이 아닌 듯하다.
엄마와 동규는 이미 전날부터 생일날엔 아빠를 대장 시켜주자 합의를 봐 두었는데 과연 대장이 되어서 좋을 게 뭐가 있다는 건가 하는거다. 이상적인 집단이라면, 대장이란 감투는 골치거리인 인물에게 자성의 기회를 주는 정도인 것 아닐까? 어쨌든 주는 감투니 받기는 한다만, 큰 기대는 않으면서도.
마침 수요일이라 동규가 학교를 쉬기 때문에 라 데팡스에 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좀 사기로 했다. 나는 운동화를, 동규는 장난감을, 동규 엄마 - 나랑 생일이 한달밖에 차이나지 않는 관계로 대충 함께 묻어가는 분위기 -는 옷을.
쇼핑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을까 했으나 동규의 '버럭'이 무서워서 일단 장난감 상점에 들렀다. 끝없이 새로운 미니카를 집어들고 게임 코너에서 구경하는 동규를 간신히 뜯어 말려서 겨우 미니카 하나만 집어들게 하고 대신 플레이모빌에서 나온 잠수함 - 수중 모터가 달린 - 을 사게 만들었다. 사실 장난감 사는 과정은 보기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부모의 염려, 철학, 취향, 경제사정 등의 수많은 요소가 관여된 지루하면서도 험난한 과정. 물론 첫째로 꼽지는 않았지만 '부모의 취향'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옆의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고 운동화를 사러 갔다. 쇼핑 길게 끄는 것은 죽기만큼 싫은 일이므로 속전속결, 첫번 상점에서 처음으로 신어본 운동화를 샀다.
가장 힘든건 동규 엄마의 옷사기. 가끔 짤막한 평이나 해주고 계산을 도와주는 외에 그냥 밖에서 동규랑 뛰놀았다. 바깥 날씨는 여전히 서늘한데 쇼핑센터 안에서 뛰어다니는 동규의 머리에선 금새 땀이 줄줄 흐른다. 티슈로 닦아주고 또 따라다니고 도망다니고 하다 보니 얼른 집에 가고 싶은 생각밖에 안든다.
결국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타서 동규 간식을 먹인다. 과자도 먹고 유제품도 먹고. 그리고 집에 도착해 동규가 목욕을 하는 동안 내가 케익을 사오기로 결정한다. 내 생각대로만 한다면 그냥 넘어가고 말겠지만, 언젠가부터 동규는 식사 후의 디저트를 무척 즐기는 어린이로 성작해가고 있으므로.
케익 사러 나가기 전, 동규와 플레이모빌을 조립하고 욕조에 물을 받은 후 그 속에 넣어서 잠시 가지고 놀았다. 잠수함에 다는 수중모터에 엄청난 기시감이 느껴졌다. 분명히 어릴 때 이것과 거의 동일한 모터를 가지고 논 기억이 있는데... 그리고 집을 나서 케익을 사고 돌아왔다.
목욕, 저녁, 케익까지 다 먹고 곧바로 동규 이를 닦이고 나니 8시 30분이 훌쩍 넘었다. 침대에 눕히고 책 읽어주고 다리 주무르고 - 동규 엄마의 성장통 이론에 따라 요즘 열심히 마사지 시술중이다. 조만간 우리 엄마 주물러드린 횟수를 능가하게 되겠지 -잘자라고 인사하고 거실로 나오니 9시가 살짝 넘었다.
오늘 아침 다시 대장으로 돌아간 동규가 학교가기 직전까지, 대장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내 이론을 들려주었다. 대장은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이므로, 반찬도 골고루 먹어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 책임들을 잔뜩 일러주었더니만, 앞으로 대장은 아빠나 하라고 한다. 더 균형잡힌 지도자관을 심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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