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후 동규와 둘이서만 수영장에 놀러 갔다.
집 근처 공원에 산책을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동규와 아빠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그다지 흔치 않다. 두돌이 훨씬 지나도록 가급적 그런 기회를 꺼리는 경향에 내게 있는 탓이다. 그리고 그 핑계란게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일에 대한 자신감 결여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자신감도 문제지만 익숙치 않은 일을 피하고자 하는 비겁함이 더 큰 것 아닐까 싶다. 대신 최대한 열심히 놀아주고 동규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에 집중해왔다.
어쨌거나, (별것도 아닌 일에) 큰 맘 먹고 수영장에 갔는데 워낙 날씨가 좋았던 탓에 거의 30분을 줄서서 기다린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히는데 하도 딴짓을 해대는 통에 어르고 협박을 수없이 거듭한 후에야 간신히 준비를 마치고 풀에 들어갔다.
아가들이 놀도록 마련된 아주 얕은 풀에서 비치볼을 들고 이리 저리로 신나서 뛰어다니다가, 풀 밖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땅에 부딪히고는 엉엉 울어댄다. 달래놓으니 또 잘 놀다가 다른 형아가 모르고 흔드는 오리발에 또 얼굴을 부딛히고 또 울고. 그 다음부터는 다행히 그런 사고 없이 재미있게 놀았다.
아빠를 닮아 그런지 정말 겁이 많다. 다른 형 누나들이 물장난하는 통에 물이라도 튀면 눈도 못 뜨고 금새 자리를 피한다. 장난으로 머리에 물을 조금 부어줬더니 물에 빠진 사람처럼 눈을 지끈 감고는 완전히 마비 상태다. 자기 비치볼을 다른 꼬마가 만지려고 다가가기만 하면 냉큼 집어들고는 치워버리는 폼이 소심하기 짝이 없다.
집을 나서기 전 가장 큰 걱정이었던 샤워하기. 예상외로, 좀 힘들어하긴 했지만 눈을 꼭 감고는 샤워기 아래에 버티는 것이 가능하길래 조금 놀라웠다. 앞으로 좀 연습을 하면 샤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탈의실이 너무 붐비는 통에 락커 앞에서 물을 닦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히는데, 딱하게도 계속 까치발로 서 있다. 바닥에 물기와 머리카락 등이 지저분해서 그걸 못견디고 그러는 거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결국 못견디겠는지 징징대기까지 한다. 좀 이따가 깨끗이 발을 닦아주겠다고 달래도 소용이 없어 결국 수건 하나를 바닥에 깔아주고 그 위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잠잠하다.
워낙에 겁도 많고 소심한 구석이 있어서 좀 더 크면 거칠고 격렬한 운동으로 호연지기를 좀 키워줘야겠다는 생각에 더욱 확신이 커졌다.
2008년 5월 13일 화요일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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