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28일 금요일

하딩

아기 말의 특징 중 하나는 발음을 짧게 만든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내리고 싶을 때 그냥 짧게 '내'하고 말한다. 비슷한 예로 '불자동차'를 줄인 '불자'를 들 수 있다. 이 짧게 발음하기는 다른 식으로도 작동하는데 그 예로는 '파차'를 들 수 있다. 이 말은 '빨간 차'를 일컫는데, 길이가 짧아짐과 동시에 편의상 발음을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파차'를 무척 빈번히 찾던 데는 영화 Cars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McQueen이라는 고유명사는 동규에게 조금 어려웠을 테니까. 그리고 마침 고모가 사준 빨간 자동차가 집에서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가리키며 열심히 파차를 외쳐댔다. 빨간 차를 가리키며 파차, 빨간 차를 가져다 달라고 또 파차. 이렇게 일반 명사의 고유명사화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으니 고모가 빨간 차를 동규에게 사준 날, 함께 하늘색 자동차도 사 주었다는 것. 과연 파차가 빨간 차인가 아니면 파란 차를 가리키는 말인가 아주 짧게 의문을 가졌었고, 그게 해결되고 나니 하늘색 차를 그대로 가르쳐 줄 것인가 파란 차라고 부를 것인가 얼마간 고민을 했었고, 결국 좀 어렵더라도 정확을 기하여 하늘색 차라고 부르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하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제는 Cars를 볼 때 은퇴를 앞둔 하늘색 차가 나올 때마다 열심히 하딩을 외친다는 사실이다. 전에는 딱히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가 비로소 이를 찾아내 열심히 활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딩이라는 말을 배웠기 때문에 온 세상의 하딩들에 대한 감수성이 급격히 발달하기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 것인지 흥미로운 연구 주제라 할 수 있겠다.

이제 외출할 때면 신발도 골라 신고, 가져갈 장난감도 손수 점검하는 동규는, 어떤 날은 파차를 챙겨 달라 하고 또 어떤 날은 하딩을 가져오라 하며 엄마 아빠를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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