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25일 토요일

The Many Adventures of Winnie the Pooh - 1977


지긋지긋한 장거리 비행을 앞두고 지레 겁을 먹고 있을 때, 아이가 좋아할 만한 비디오를 노트북으로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옳거니 싶어 몇가지를 노트북 하드에 복사해 두었는데, 바로 이 작품과 "이웃의 토토로" 그리고 또 다른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 하나. 정작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는 보여줄 필요가 없어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혹시나 재밌어 하지 않을까 싶어 토토로를 보여주었는데 그 결과가 폭발적이었다. 내 무릎에 앉혀놓고 함께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 보는데 20분, 30분이 지나도록 꼼짝않고 집중하는 것이다. 겨우 만 한살 반짜리가. 이러다 뭔가 일나는거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만화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나름 설명도 해주는 등 자꾸 말을 걸어주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불안함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얼마 후 토토로는 시들해 졌지만 대신 곧바로 푸우에 몰두하게 되었고 그 후로 틈만 나면 '푸우'를 외쳐대는 통에 재밌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그랬다. 약 50여일을 한국에서 보내고 프랑스에 돌아온 바로 그 다음날 아침부터 - 부친 짐들이 어디론가 사라져 엄마와 아빠는 망연자실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도 -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푸우를 불러댔다. 위기 상황을 기회로 돌리고자, 가급적이면 다른 놀이에 정신을 돌리도록 노력하고, 대신 봐야 할 때는 꼭 필요한 경우에 한정시키고자 노력했다.

배가 고프거나 피곤해서 짜증낼 때 무릎에 앉혀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본 비디오를 보고 또 보고, 밥 먹기 싫다거나 이빨 닦아주는 것을 귀찮아 할 때 푸우와의 우정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은근히 협박하거나 회유하고, 머리 감고 헹굴 때 고개를 번쩍 처들게 하기 위해 노트북을 목욕탕까지 들고 들어가 머리 위에서 잠깐 보여주고...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대체 뭐가 그리 좋을까 나름 생각해 보았는데, 뭐니뭐니해도 좋은 캐릭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작의 캐릭터(오른쪽 그림)와 모습은 퍽 다르지만 이야기 자체는 A.A. Milne와 Ernest Shepard의 책에 퍽 충실한 편이다. 디즈니에서 나온 그림 책 말고 원작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푸우에 관심있는 어린이 혹은 어른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또 재미있는 것은, 여러 에피소드들을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소개하는 영화의 형식. 동규가 비디오만 좋아하고 책은 지루해 하면 어떡하나 싶어, 푸우 책은 갖고 있지도 않지만, 이 재미있는 얘기와 귀여운 동물들이 원래 책에 들어 있는 것이니 책을 보면 이 친구들을 다 만나볼 수 있다고 얘기해 주고 있다. 뭐 이런 식으로 책읽는 습관이 많이 좋아지기야 하겠냐고 스스로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부모 마음이란게 늘 그런 거니까.

좋은 원작이니 재미있는 얘기가 된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의 노력과 성우들의 연기는 늘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따라부르고 싶은 기분좋은 멜로디의 삽입곡들도 너무나 좋다. 영화 첫부분 각 등장인물들이 소개되고 끝으로 푸우나 나타날 때 동규는 너무나도 기쁜 표정으로 즐거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크리스토퍼 로빈이 나타나면 왠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는 것이, 자세한 건 몰라도 꽤 중요한 인물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가 보다. 아니면 유일한 인간 캐릭터이기 때문일까? 바람이 많이 불던 날 푸우와 피글릿이 일종의 아크로바틱 신을 펼치는 부분에서 동규가 웃는 걸 보면, 역시 슬랩스틱 코미디는 인간의 본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훈훈한 캐릭터들간의 관계도 긍정적이고 나름 교훈적인 면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좋은건 하루에 한번씩 1주일을 함께 보더라도 지겹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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