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긋지긋한 장거리 비행을 앞두고 지레 겁을 먹고 있을 때, 아이가 좋아할 만한 비디오를 노트북으로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옳거니 싶어 몇가지를 노트북 하드에 복사해 두었는데, 바로 이 작품과 "이웃의 토토로" 그리고 또 다른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 하나. 정작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는 보여줄 필요가 없어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혹시나 재밌어 하지 않을까 싶어 토토로를 보여주었는데 그 결과가 폭발적이었다. 내 무릎에 앉혀놓고 함께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 보는데 20분, 30분이 지나도록 꼼짝않고 집중하는 것이다. 겨우 만 한살 반짜리가. 이러다 뭔가 일나는거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만화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나름 설명도 해주는 등 자꾸 말을 걸어주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불안함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얼마 후 토토로는 시들해 졌지만 대신 곧바로 푸우에 몰두하게 되었고 그 후로 틈만 나면 '푸우'를 외쳐대는 통에 재밌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그랬다. 약 50여일을 한국에서 보내고 프랑스에 돌아온 바로 그 다음날 아침부터 - 부친 짐들이 어디론가 사라져 엄마와 아빠는 망연자실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도 -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푸우를 불러댔다. 위기 상황을 기회로 돌리고자, 가급적이면 다른 놀이에 정신을 돌리도록 노력하고, 대신 봐야 할 때는 꼭 필요한 경우에 한정시키고자 노력했다.
배가 고프거나 피곤해서 짜증낼 때 무릎에 앉혀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본 비디오를 보고 또 보고, 밥 먹기 싫다거나 이빨 닦아주는 것을 귀찮아 할 때 푸우와의 우정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은근히 협박하거나 회유하고, 머리 감고 헹굴 때 고개를 번쩍 처들게 하기 위해 노트북을 목욕탕까지 들고 들어가 머리 위에서 잠깐 보여주고...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대체 뭐가 그리 좋을까 나름 생각해 보았는데, 뭐니뭐니해도 좋은 캐릭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작의 캐릭터(오른쪽 그림)와 모습은 퍽 다르지만 이야기 자체는 A.A. Milne와 Ernest Shepard의 책에 퍽 충실한 편이다. 디즈니에서 나온 그림 책 말고 원작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푸우에 관심있는 어린이 혹은 어른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또 재미있는 것은, 여러 에피소드들을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소개하는 영화의 형식. 동규가 비디오만 좋아하고 책은 지루해 하면 어떡하나 싶어, 푸우 책은 갖고 있지도 않지만, 이 재미있는 얘기와 귀여운 동물들이 원래 책에 들어 있는 것이니 책을 보면 이 친구들을 다 만나볼 수 있다고 얘기해 주고 있다. 뭐 이런 식으로 책읽는 습관이 많이 좋아지기야 하겠냐고 스스로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부모 마음이란게 늘 그런 거니까.
좋은 원작이니 재미있는 얘기가 된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의 노력과 성우들의 연기는 늘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따라부르고 싶은 기분좋은 멜로디의 삽입곡들도 너무나 좋다. 영화 첫부분 각 등장인물들이 소개되고 끝으로 푸우나 나타날 때 동규는 너무나도 기쁜 표정으로 즐거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크리스토퍼 로빈이 나타나면 왠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는 것이, 자세한 건 몰라도 꽤 중요한 인물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가 보다. 아니면 유일한 인간 캐릭터이기 때문일까? 바람이 많이 불던 날 푸우와 피글릿이 일종의 아크로바틱 신을 펼치는 부분에서 동규가 웃는 걸 보면, 역시 슬랩스틱 코미디는 인간의 본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훈훈한 캐릭터들간의 관계도 긍정적이고 나름 교훈적인 면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좋은건 하루에 한번씩 1주일을 함께 보더라도 지겹지 않다.
2007년 8월 25일 토요일
The Many Adventures of Winnie the Pooh -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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